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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공부를 너무 쉽게 만들고 있다

DR.Lee2026. 09. 2615분 분량0
AI가 공부를 너무 쉽게 만들고 있다

정답을 더 빨리 주는 기술을 넘어, 학생이 생각해야 할 순간을 설계하는 에듀테크로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코딩을 배웠다.

지금처럼 인터넷에 자료가 넘쳐나던 시절도 아니었고, 모르는 것이 생겼다고 AI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프로그램이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책을 다시 펼쳐보고, 코드를 한 줄씩 들여다보고, 이것저것 바꿔가며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과정이 좋았다.

몇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어느 순간 풀렸을 때,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마침내 생각한 대로 움직였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 있었다.

말 그대로 마법 같았다.

그 느낌은 대학에 가서도, 대학원에서 연구할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의 버그를 잡기 위해 밤을 새우기도 했다. 논문과 자료를 찾아보고, 다른 사람의 코드를 들여다보고, 가설을 세우고, 틀리고, 다시 시도했다.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연구라는 것이 언제나 정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일은 아니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고, 처음 세웠던 가설이 완전히 틀리는 경우도 있었다.

밤새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수십 번 실패하고, 하나씩 가능성을 지워가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이 하나의 논리로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 순간의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단순히 문제가 해결되어 기쁜 것이 아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전의 나와 해결한 뒤의 내가 달라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내 머릿속에 없던 새로운 연결이 생기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나에게는 ‘배운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코딩을 하면서 가끔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AI에게 요구사항을 설명하면 몇 초 만에 코드를 만들어준다. 에러 메시지를 넣으면 원인을 찾아준다. 코드 몇 줄을 보여주면 프로젝트 전체 구조까지 추론해 수정 방향을 제안한다.

예전 같으면 반나절을 고민했을 일을 몇 분 안에 끝낼 때도 있다.

분명 놀라운 발전이다.

생산성만 놓고 본다면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묘한 허전함이 있다.

문제가 너무 쉽게 해결되어 버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문제를 해결한 것인가?
아니면 AI가 해결한 문제를 확인한 것인가?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우리가 코딩을 배우면서 성장했던 이유는 코드를 많이 입력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막혔기 때문이다.

왜 안 되는지 생각했고, 가설을 세웠고, 틀렸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AI가 이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정답에 데려다준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물은 훨씬 빨리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의 생각은 얼마나 성장할까.


나는 이것이 코딩 교육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보자마자 AI가 풀이를 보여준다. 학생은 그 풀이를 읽고 “아, 알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직접 문제를 풀다 막혀본 학생과 완성된 풀이를 읽고 이해한 학생의 ‘앎’은 같지 않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주제를 던지면 AI가 목차를 만들고, 논리를 구성하고, 문장을 다듬고, 심지어 결론까지 만들어준다.

과학 탐구도, 사회 과목의 보고서도, 대학생의 과제도 비슷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교육에서 학생이 고민해야 할 수많은 순간을 AI에게 넘겨주고 있다.

그렇다고 나는 예전처럼 일부러 힘들게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미콜론 하나를 찾느라 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반드시 좋은 공부는 아니다. 환경 설정 때문에 하루를 날리는 것도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고생은 아니다.

AI가 없애주어야 할 어려움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AI가 없애서는 안 되는 어려움도 있다.

나는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치 문제, 단순한 문법 오류, 반복적인 계산, 자료를 찾기 위해 낭비하는 시간.

이런 불필요한 마찰은 기술이 줄여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어떤 문제인지 정의하는 것,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지 선택하는 것, 왜 실패했는지 분석하는 것, 다른 방법과 비교하는 것,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것.

이런 과정까지 없애서는 안 된다.

나는 이것을 ‘배움에 필요한 마찰’이라고 생각한다.

AI는 불필요한 마찰은 없애야 한다.
하지만 배움에 필요한 마찰까지 없애서는 안 된다.

오히려 AI 시대의 교육은 이 ‘생각해야 하는 어려움’을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에듀테크가 가야 할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많은 교육 기술은 학생을 얼마나 빨리 정답에 도달하게 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더 쉽게 설명하고, 더 빨리 검색하고, 더 편리하게 문제를 풀게 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AI는 이제 그 일을 너무 잘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에듀테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이 학생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처음에는 어떤 방법을 시도했는가.

어디에서 막혔는가.

왜 그 방법을 포기했는가.

어떤 피드백을 받은 뒤 생각이 바뀌었는가.

실패한 뒤 어떤 새로운 시도를 했는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왜 자신의 답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앞으로 교육 기술이 이 과정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답을 알려주는 AI보다 학생이 바로 답을 보지 않도록 기다려주는 AI.

“틀렸습니다”라고 말하는 AI보다 “왜 그렇게 생각했나요?”라고 다시 묻는 AI.

답을 만들어주는 AI보다 학생의 첫 번째 시도와 두 번째 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관찰하는 AI.

때로는 도움을 주고, 때로는 힌트만 주고, 때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학생이 스스로 조금 더 고민하게 만드는 AI.

나는 오히려 이런 AI가 교육에서는 더 뛰어난 AI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결과만 보고 학생을 평가하기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코드 한 편, 보고서 한 편, 완벽한 수학 풀이 하나만 보고 그 학생이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판단하기 힘들어진다.

AI가 얼마든지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교육은 자연스럽게 결과에서 과정으로 이동해야 한다.

문제.

첫 번째 시도.

실패.

피드백.

수정.

두 번째 시도.

그리고 최종 결과.

이 전체가 앞으로의 학습 데이터가 되어야 한다.

학생이 무엇을 만들었는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의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AI 시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성장시킨 것은 정답 그 자체가 아니었다.

정답에 도달하기까지의 수많은 실패와 고민이었다.

밤을 새워도 풀리지 않던 문제가 어느 순간 하나의 논리로 연결될 때의 그 희열.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 한마디가 나의 앎을 한 단계씩 성장시켰다.

AI 시대라고 해서 아이들이 반드시 내가 했던 방식으로 밤을 새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연결되는 순간은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까지 AI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에듀테크는 학생 대신 생각해주는 기술이 아니라,

학생이 생각해야 할 순간을 설계하는 기술이어야 한다.

불필요한 어려움은 기술이 없애고, 배움에 필요한 어려움은 교육이 남겨야 한다.

그리고 그 고민과 실패와 변화의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다시 학습으로 돌려주는 것.

나는 그것이 AI 시대에 에듀테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형우 박사 | Hyungwoo Lee, Ph.D.
Founder & CEO, MAKIT AI Labs
컴퓨터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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